담쟁이 포럼


민법상 인체유래물에 대한 법적 지위 고찰 - 법적 실익 논의를 중심으로


Ⅰ. 현황 및 문제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책 ‘부의 미래’에서 미래의 부 창출 요인으로 지식, 속도, 공간을 제시했다. 사회는 세 가지 요인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발전을 기존의 기득권자나 이해관계자가 충돌을 해 방해받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 예시로 어떤 산업에서 이해당사자가 가는 속도를 상대적으로 표시했다. 기업은 100마일 속도로 계속 달려가고 있는데 정부와 관료조직 제도는 25마일, 교육은 10마일 마지막으로 정치권은 3마일로 가면서 변화의 흐름을 저해한다고 규정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속도의 충돌이 나타나고 있고 가장 심각한 영역 중 하나가 인체 유래물 연구 분야이다.

   인체유래물은 인체에서 분리된 인체조직을 말한다. 이러한 인체유래물의 종류는 과거에는 가발용 머리카락, 혈액 혹은 해부용 시체가 전부였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과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더불어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가 발달함에 따라 인체유래물의 범위와 이러한 인체 유래물이 창출하는 지식과 정보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세포 등의 인체 유래물과 그로부터 추출된 유전정보로 구성된 바이오잉크를 원재료로 사용해 인공장기를 제작하는 의료 및 바이오 삼차원 프린팅이 개발 중이며,이미 바이오 인공 장기 제작에 성공한 해외의 연구 실적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트랜스 휴먼’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체유래물’에 대한 정의는 과거의 관습을 못 벗어나고 있다.

   종래의 인체유래물의 대한 법리는 신체에서 분리되면 물권으로 취급한다는 ‘분리이론’을 따르고 있다. 판례도 역시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체유래물을 단순히 물건으로만 보는 것은 현 시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분리된 세포를 다시 역분화해서 새로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이 상용화 된다면 앞에서 언급한 트랜스 휴먼 시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는 이때 단순히 세포를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10억개의 세포 중 하나로 취급한다면 이는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인체유래물에 내장되어 있는 ‘유전정보’ 같은 경우는 사생활의 내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인권협약 제8조,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등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크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적 접근을 하고 있다. 홍콩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15년 8월에 생체인식 영역에 있어 새로운 개인정보 보호지침을 발간하였다. 해당 보호지침은 단순히 지문에만 보호가 되었는 인체 정보를 DNA, 얼굴인식, 음성같이 확장된 생체정보에 대해 수집 사용에 대해 규율한다. 또한 데이터 보호원칙 준수에서 원칙을 제시해 연구목적에 활용되고 있는 생체정보도 역시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EU에서도 역시 생체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2016년 5월 24일 EU 개인정보보호규칙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이하 “GDPR”이 실행되고 있다. 기존의 생체정보 보호 범위에서 더욱 넓혀져 생체정보 건강정보를 하나의 프라이버시권으로 보고 포괄해 보호하고 있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상황이다.

   대한민국 또한 생체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 상임위 소속 강효상 의원 외 10인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낸 상태이다. 하지만 개정 법률안에도 보호해야 할 생체정보가 홍체, 지문 등 1차적 생체정보 보호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인체유래물의 인격적 요소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이다.

   새로운 인격권 보호를 위해선 단순한 물권으로 본 기존의 법리를 수정해야 한다. 법정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법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제도적 산물이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이때 법리와 사회가 괴리를 보인다면 그 공백은 결국 다른 이해관계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개인의 정보보호와 세포 연구의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인체유래물에 대한 새로운 법리는 현실에 맞게 재조정 되야 한다. 본 연구는 우리나 법과 제도가 현재 의학 연구 속도에 맞춤형 법리가 되도록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의학 연구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 못하는 상황이다. 본 연구에서는 인체유래물 인격권과 관련한 최신 논의 및 유럽 내 입법 사례, 유럽인권재판소 판례 평석을 중심으로 인체유래물을 어떤 개념으로 봐야하는지 해외사례를 연구했다. 국제적으로 진행된 인체유래물 관련 입법 상황에 대한 검토는, 변화되고 있는 생명공학적 상황을 규범적으로 제도화할 입법 방향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 기존 분리주의에 대체할 수 있는 인체유래물의 대한 법리가 있는지 살펴보고 인체유래물의 인격권적 요소를 국내에 도입하면 어떠한 부분에서 실익이 있을지에 대해서 논하도록 하겠다.




Ⅱ. 인체유래물에 대한 해외 법리 및 판례


   의료기술과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은 민사법에서의 권리객체의 인식에 대하여 많은 변화를 야기하였다. 인체로부터 세포나 조직 등을 적출하여 기술적 조작을 가하고, 이를 활용하여 생명과학적 성과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독일의 Moore 사건에서 보듯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신체 조직에 대한 활용 가치와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개인이 가진 세포나 조직, 장기 등에 대한 각 개인이 가지는 ‘권리’와 그 ‘범위’에 대한 문제가 점차 부각되고 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체를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인간 유전자의 경우에도 유용한 단백질 생산이 확인된 경우, 그 염기서열이 특허가 되고, 그와 관련된 유전자 단편(EST)도 유전자 탐침의 역할로서 특허되고 있다. 또한 실험에 필요한 혈액 등을 대가를 지불하고 제공받기도 하며, 신생아의 제대혈의 효용성 때문에 산모들이 이를 보관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장기이식기술의 발달로 장기 수요가 급증하여 공급원을 다양하게 모색하며 심지어 복제를 이용한 장기의 공급을 시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을 ‘인적 자원’이라는 용어로 부르며 사회적 자원의 하나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듯이, 점차로 인체를 중요한 자연 자원의 하나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이 생명공학은 현재에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체 유래물’의 지위에 대한 논의와 입법도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하에서는 생명공학의 발전에 따라 진행된 EU 주요국들의 인체 유래물 관련 판례 및 법령의 구체적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국제적으로 진행된 입법상황에 대한 검토는, 변화되고 있는 생명공학적 상황을 규범적으로 제도화할 입법 방향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프랑스

   인간의 모든 세포는 그 생명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활용하기에 따라 복제인간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과학적 성과가 인체 유래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재논의의 필요성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프랑스 민법은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다. 프랑스는 첨단의료기술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통의 윤리 원칙을 마련하기 위하여 약 10년간의 논의와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994년 ‘생명윤리에 관한 주요3법’을 제정하였다. 1994년7월1일 법률 제648호 「보건연구를 위한 기명데이터법」, 1994년7월 29일의 법률 제653호 「인체존중에 관한 법률」, 동일자의 법률 제654호 「인체의 구성요소 및 적출물의 제공 및 이용, 생식에 대한 의료적 개조 및 출생 전 진단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특히 「인체존중에 관한 법률(La Loi relative au respect du corps humain)」은 민법과 형법, 지적재산권법 등에 삽입되었다. 「인체존중에 관한 법률」은 ‘인간의 신체와 적출물에 대한 매매나 침해로 인해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그 주된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인체존중에 관한 법률」이 편입된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민법은 제1권 제1편 제2장 ‘인체에 대한 존중’에서 생명윤리법률의 내용을 명시하였으며, 특히 인체 유래물에 대한 물건성을 전면 부인하고 인격권으로서의 보호를 명시하였다. 제16조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보호”와 “생명의 시작부터 존중할 것을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민법 제16조의1항은 “인체는 불가침이다”, “인체 그 구성요소와 적출물은 재산권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제 16조의 1제3항에서 “인체와 인체의 구성부분 및 그 적출물에 대하여 일정한 재산적 가치를 부여하는 내용의 약정은 무효이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인체 및 인체 유래물의 물건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제16조의4항에서는 “누구도 사람의 종의 완전성을 침해할 수 없다. 사람의 선별의 조직화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우생 상의 행위는 금지한다. 유전성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는 별도로 하고 사람의 자손을 변질시키기 위한 유전형질의 어떠한 재생산도 행해져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16조의4항에 편입된 내용은 유전자치료 등에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이다. 프랑스 ‘건강 및 생명과학 국가윤리위원회(The national consultative Ethics Committee on Health and Life Science; CCNE)’는 공식적으로 유전질환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후손의 유전형질의 조작을 금지하는 제16조의 4를 “체세포핵이식에 의한 인간복제”를 명백히 금지하는 규정으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프랑스의 입장은 인체 유래물에 대한 최신 논의를 입법적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인체 유래물의 물건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며 이에 대한 재산권 및 소유권을 배제하고 인격권만을 인정한 입법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 독일-생식세포 훼손 사건을 중심으로

   독일의 경우, 독일 연방대법원은 과실에 의한 정자의 폐기에 대해 ‘신체침해’를 인정하면서, 위자료로서 25000마르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연방최고법원은 불법행위에 대한 기본규정인 독일민법 제823조 제1항이 인격의 기초로서의 신체와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포괄적으로 보호한다고 전제하고, 독일민법 제823조 제1항368 및 제847조 제1항369에서의 신체침해 개념을 넓게 해석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의학의 발전으로 자기이식을 위한 피부조직이나 골수조직, 임신을 위해 분리된 난자와 자가수혈을 위한 헌혈의 경우와 같이 신체의 조직을 분리하였다가, 다시 통합하는 것이 가능해진 의료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였다. 즉, 신체기능의 보장과 실현을 위해 사후에 다시 통합하기 위해 조직을 신체에서 분리하였다면,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을 때에도 신체와 기능적 일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체조직의 손상이나 폐기는 독일민법 제823조 제1항, 제847조 제1항의 ‘신체 침해’로 평가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독일연방대법원은 자기 생식의 유일한 방편으로 냉동 보관하였던 정자의 폐기는 단순한 물건의 침해가 아니라 신체의 침해라고 보았으며, 분리된 기간에도 신체와 ‘기능적 일체성’을 유지하게 된다면, 인체에서의 분리가 있었어도 여전히 신체의 일부로 볼 수 있으며, ‘신체의 침해’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독일 민법에서는 인체에서 분리된 신체의 일부가 ‘인체’에 해당하는지, ‘물건’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그 보호의 정도에 많은 차이가 있어 이러한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진다. 즉, 독일민법 제253조는 ‘신체’ 또는 ‘건강’을 침해하거나,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에 피해자는 재산적 손해 뿐만 아니라 비재산적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인체 유래물’을 ‘신체’로 보게 된다면 당연히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분리된 ‘인체 유래물’을 단순한 ‘물건’으로 보게 되면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없게 되어 피해자 보호에 미흡하게 된다.


3. 유럽인권재판소 - CASE OF S. AND MARPER v. THE UNITED KINGDOM (Applications nos. 30562/04 and 30566/04)를 중심으로

   유럽인권재판소는 2004년 S. AND MARPER v. THE UNITED KINGDOM 케이스를 통해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워와 관련된 판결을 한 바 있다. 2001년 각각 강도와 폭행으로 인해 체포된 원고 S와 미셸 마퍼가 경찰에 의해 지문과 DNA 샘플을 채취되었다. 원고 S와 미셸 마퍼의 경우 각각 무죄 판단과 합의로 인해 사건에 대한 수사가 공식적으로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의DNA 샘플과 지문을 폐기하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공식적으로 경찰에게 자신의 DNA 정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영국 경찰은 이를 거부하였다. 원고는 지문과 DNA 샘플을 폐기하지 않는 경찰의 결정에 대해 영국 법원에 사법 심사를 신청했으나, 2002년 3월 영국행정재판소는 원고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원고는 해당 결정에 대해 항소하였으나 2002년 3월 영국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행정재판소의 판결을 확정 지었으며, 2004년 영국 하원은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원고는 2004년 해당 사건을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영국 법원의 판결이 유럽인권협약 제8조(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할 권리) 및 제14조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당국이 형사소송절차가 끝나거나 무효화 된 사건에 관련한 지문, 세포 및 DNA 샘플을 계속 보관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 및 해당 자유가 구성하는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해당 제소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는 영국 법원의 판결이 유럽인권협약 제8조를 위반하였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하였다.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는 “1. 모든 사람은 그의 사생활, 가정생활, 주거 및 통신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법률에 합치되고 국가안보, 공공의 안전 또는 국가의 경제적 복리, 질서 유지와 범죄의 방지, 보건 및 도덕의 보호, 또는 가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어떠한 공공당국의 개입도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DNA 샘플에는 개인의 건강에 관한 정보를 포함한 개인에 대한 매우 민감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발달된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하였을 때 해당 표본으로부터 개인과 친척 모두의 유전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DNA 표본에 포함된 개인 정보의 중요도를 감안했을 때 무기한 보관은 해당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인격권은 권리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생명, 건강, 명예, 정조, 성명, 초상 등 인격적 이익의 향유를 내용으로 하는 권리이다. 인격권은 명문으로는 유럽인권협약 제 2조 ‘생명권’, 제5조 ‘신체 자유와 안전에 관한 권리’, 제8조 ‘사생활 및 가족 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를 비롯하여 각 나라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제10조의‘인간의 존엄’과 제17조의‘사생활의 비밀’, 제37조 제1항의 ‘열거되지 않은 권리의 존중’ 및 민법 개정안 제1조의2의‘사적자치 이념’과‘일반적 인격권’등을 통해 인격권이 제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근대법 이래로 인간 또는 인체는 재산권의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오직 인격적 이익의 향유를 내용으로 하는 인격권의 대상으로서만 인정되었다. 또한 이전까지는 인체로부터 분리된 유래물은 ‘물건’으로 될 수 있으며, 인체 각 부분에 존재하였던 인격권은 그것이 인체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물건으로 전환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생명공학과 의료기술 등의 발달은 이러한 해석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인간의 기초 단위인 ‘세포’ 하나에 그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와 그 사람을 복제할 만큼의 ‘생명의 잠재성’이 있다는 사실이 또한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앞서 본 ‘현실적 필요성’이 높아진 만큼, 인체 침해의 ‘현실적 위험’ 또한 더욱 커졌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의사에 반한 세포 및 DNA 샘플 보관 행위를 단순히 물건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유럽인권협약 제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격권의 침해라고 판단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은 인체 유래물이 가지고 있는 인격권적 성격을 인정하고 나아가 인체 유래물에 포함된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재판소는 인간의 기초 단위인 세포 하나에 그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와 그 사람을 복제할 만큼의 ‘생명의 잠재성’이 있기 때문에 인체 침해의 ‘현실적 위험’ 또한 더욱 커졌음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의사에 반한 세포 및 DNA 샘플 보관은 인격권의 침해이며 유럽인권협약에 위반된다는 진일보한 판결을 함으로서 인체유래물 관리와 연구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Ⅲ. 향후 대한민국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 개선방안 및 기대효과- 법적 실익 논의를 중심으로


1. 정신적 피해보상- 민법750조 적용문제

   향후 대한민국의 인체 유래물에 인격권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실익이 존재한다. 우선 민법 750조 불법행위 구성에 대한 논의 실익이 존재한다. 민법 750조를 보면 불법행위에 대한 요건이 나온다.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물건에 대해 손해를 입으면 물건 자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지만 정신적 손해배상인 위자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하지만 세포를 인격권을 인정한다면 이에 대한 주장에 실익이 생긴다. 민법 제 751조를 보면 신체, 자유, 명예 기타 정신적 고통에 대한 항목이 명시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항목에 관해서는 피해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피고인이 입증책임의 문제를 지는 입증책임의 전가가 가능해진다. 즉, 신체를 훼손당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때에는 별도의 입증책임의 증명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포에 있는 정보는 자신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닌 직계비속, 존속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광의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신적 피해보상의 범위를 단순히 피해자 본인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닌 가까운 친족까지 이해관계인이 되고 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면 민법 제 752조의 정신적 고통의 범주에도 역시 해당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사실 물건적으로 재산가치를 본다면 이는 특허가 가능한 특별한 세포가 아니라면 손해배상의 가치가 높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정보는 자신의 DNA정보이자 내밀한 사생활의 정보일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특성, 질병이 타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인격권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침해받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적 피해보상 구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유전정보의 침해는 단순히 그 사람의 정보가 침탈당하는 것을 넘어 유출, 남용, 유전정보 거래까지 예상할 수 잇는 거대한 범죄이다. 이는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 침해에 대해 간접적으로 노출 될 수 있는 범죄 객체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향후 유전자에 대한 보호법익은 많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750조를 유전정보에 맞게 해석한다면 피해자가 바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그 논의의 실익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을 수용한다면 단순히 개별 입법적인 인격권 보호보다는 민법에 적용할 수 있는 특수한 소유권적 지위가 필요하다. 향후 법원은 물권적 지위를 바로 인정하는 ‘분리주의’ 견해에서 DNA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에 대해선 신체일부에 준하여 인격권을 부여하는 ‘분리주의’의 완화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체유래물에 대한 사적인 쓰임, 관리, 폐기는 인정되지 않고 공법에 따른 엄격한 관리를 해야 한다.


2. 특허법에 관한 논의

가) 인체유래물의 특허대상성의 문제

   지금까지의 논의처럼 인체유래물의 물건성을 부정할 경우, 인체유래물을 이용하여 개발된 치료기술 등을 어떻게 법적으로 보호할 것인지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생명공학 연구의 핵심은 인간유전체연구를 통해 밝혀진 인간 유전체(DNA)로부터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는 것인데, 이러한 질병 유발 유전자를 찾았을 경우, 그러한 성과에 어떻게 법적인 보호를 제공할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 이에 대하여 종래의 실무방식을 따르게 되면 해당 유전인자를 ‘화학물질’과 유사한 물질로 파악하여, ‘물건의 발명’으로 특허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첫째는 현재의 생명공학 연구의 본질은 화학물질처럼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유전체연구를 통해 밝혀진 DNA의 기능을 ‘발견’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을 새로운 물건의 발명으로 특허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다. 둘째는 상기한대로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이 아닌 인격권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이다.


나) 치료방법의 특허성에 관한 고찰

   이처럼 인체유래물 연구는 화학물질 발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민법상 물건성을 인정할 수도 없다. 인체유래물 연구는 DNA 용도확인에 그 본질이 있기에 ‘방법의 발명’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인간유전자 연구는 의학적 용도로 사용되므로, ‘치료방법’에 해당하게 된다. 결국 ‘인간유전자 연구’는 ‘치료방법 특허’로 보호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종래의 인체유래물 연구가 화학물질처럼 ‘물건’의 발명으로 특허를 부여해온 주요한 이유 는 사회윤리적 측면, 경제적 측면, 보건정책적 측면에서 치료방법의 특허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는 특허를 부여하면 의료비가 폭등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보건정책적 이유는 공익사업인 의료분야에 대해서는 특허를 통한 독점이 불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주로 사회윤리적 이유를 든다. 즉, 치료기술의 이용료가 지나치게 고액이거나, 사용권(license)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체유래물에 대한 특허부여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가 부정됨으로 해서, 혁신적인 치료기술이 의료기관 또는 의사 개인의 영업비밀로 묻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우수한 치료기술의 연구⋅개발 의욕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인체유래물 치료기술에 치료방법 특허를 부여하되, 인도적 차원에서의 모든 환자가 치료를 위해 사용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특허를 부여받은 치료기술의 사용권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특허법 제107조의 강제실시권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다. 아직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강제실시의 예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같은 의료분야인 의약품에 대해서는 사례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의약품의 강제실시에 관한 선례를 ‘특허된 치료기술’의 제도적 운용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Ⅳ. 결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패러다임이 옮겨갔을 때 많은 제도적 충돌이 변화가 있었다. 근대 소유권의 원칙이 확립되면서 사적 소유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었고 이를 물권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체유래물도 이러한 물권적 권리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 인체유래물은 머리카락, 혈액 제공등이 전부였음으로 거래의 측면이 더 강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체유래물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객체가 되었다. 그리고 인체의 조직은 분리되었을 때 물건화 할 수 있는 ‘분리주의’ 법리가 법원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 패러다임이 옮겨갔을 때 이러한 기존의 법리는 문제점을 가져왔다. 인체가 분리되어도 다시 인체 조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술적,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역분화기술을 통해 자신의 장기를 복제할 수 있는 기술도 상용화되고 있는 시점에 세포 하나를 단순히 세포하나의 물건으로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미 세계 각국은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춰 새로운 제도나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곳이 바로 EU와 그 회원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인권재판소는 DNA 샘플안에 개인의 민감정보가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이러한 정보를 담고 있는 표본에 대해 무기한 보호는 유럽인권협약에 위반된다는 진일보한 판결을 함으로서 인체유래물 관리와 연구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유럽 내 입법 사례, 유럽인권재판소 판례 평석을 중심으로 인체유래물을 어떤 개념으로 봐야하는지 해외사례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권적 요소를 국내에 도입하면 어떤 부분에서 논의의 실익이 있고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이미 인체유래물에 대한 논의는 학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원이나 유관 기관에서도 이러한 논의를 검토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적절한 법리에 대한 토론과, 입법논의가 활발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 개인의 인격권이 보호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체유래물 연구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본다.




Ⅴ. 참고문헌


김성준, 2013, 『기본적 인권 및 자유의 국제적 해석』, pp266-269, 연경문화사.

박동진, 2002, ⌜냉동보관중인 정자의 훼손에 대한 민사법적 평가⌟, 의료법 학 제3권 1호, 대한의료법학회.

양창수, 2009, ⌜분리된 인체부분의 법적 성격⌟, 민법연구 제9권, 박영사.

유지홍. 2015. ⌜인체유래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인격적 측면에서의 고찰 - 인격성의 본체로서 DNA의 성격을 중심으로⌟. Seiul Law Journal, 서울대학교 法.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6월 )

유지홍. 2013. ⌜생명공학적 인공배아와 인체유래물의 민법상 지위⌟. 경북대학교 법학박사학위논문. 경북대학교 대학원. (6월)


판결

대법원 2010.10.14선고 2007다3162

서울고등법원 2006.12.14. 선고 2006나15474

유럽인권재판소, CASE OF S. AND MARPER v. THE UNITED KINGDOM (Applications nos. 30562/04 and 30566/04)